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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영어: Tower of London)은 잉글랜드 센트럴런던의 템스강 북안에 있는 유서깊은 성이자 궁전이다. 정식 명칭은 국왕 폐하의 궁전이자 요새인 런던탑(His Majesty's Royal Palace and Fortress of the Tower of London)이다. 노르만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인 1066년에 세워진 요새를 기반으로 건축되었다.
런던탑은 1100년부터 1952년까지 종종 감옥으로 쓰였지만, 그것이 주된 기능은 아니었다. 15세기 후반에는 장미 전쟁의 와중에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작 슈루즈베리의 리처드 형제가 런던탑에 갇혔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런던탑의 두 왕자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6세기와 17세기에 런던탑은 많은 인사들을 감금하던 장소였는데, 즉위 이전의 엘리자베스 1세, 월터 롤리와 엘리자베스 롤리 부부 같은 사람들이 런던탑으로 보내졌다.
런던탑은 무기고, 국고, 머내저리, 왕립 조폐국, 등기소, 영국의 대관보기 보관소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14세기 초반에서 찰스 2세 재위 기간까지 잉글랜드 국왕의 대관식 의례에는 런던탑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행진하는 관례가 있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 중에 런던탑은 다시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12명의 간첩이 런던탑에서 처형되었다. 전쟁 이후에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친 런던탑은 다시금 대중에게 개방되었고 오늘날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런던탑은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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