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국경 전쟁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 또는 나미비아 독립 전쟁, 때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남아공 부시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남서아프리카와 잠비아, 앙골라에서 1966년 8월 26일부터 1990년 3월 21일까지 발생한 국지전이다. 남아프리카 연방군과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의 군대인 나미비아 인민해방군의 충돌로 발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은 몇몇 큰 전투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대 분쟁이었던 앙골라 내전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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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탈식민지화의 일부 | |||||||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의 몽타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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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지원국 | PLAN (SWAPO) | ||||||
지휘관 | |||||||
개리트 빌요앤 | 샘 누조마 |
유엔과 국제 사법 재판소가 수십 년간 나미비아의 독립에 대한 비성공적인 탄원 이후 남서아프리카 인민 기구가 소련, 중화인민공화국을 비롯한 공산권과 동정적 여론을 지닌 탄자니아, 가나, 알제리 등의 물자 지원으로 1962년 창립되었다.[23] 나미비아 인민 해방군과 남아프리카 연방 정부와의 충돌이 1966년 8월 발발했다. 1975년부터 1988년까지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나미비아 인민해방군의 전진기지를 파괴하기 위해 앙골라와 잠비아에 대규모 전통적 기습 작전을 수행했다.[24]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외부 수색 및 게릴라 운동을 색출하는 제32대대와 코에보엣 부대를 파견했다.[25]
남아프리카 연방군의 전략은 전쟁이 진행될 수록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다.[24] 남아프리카 연방군의 침투로 앙골라 국민들 내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앙골라 경제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제 기반 시설들이 부차적으로 파괴되기도 했다.[26] 이러한 공습을 멈추고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과 남아프리카 연방군 사이 동맹을 파괴하기 위해[27] 소련은 1980년대에 최신 방어기술로 구성된 약 40억 달러의 자산과 수많은 군사 고문관을 파견해 앙골라 인민해방군을 지원했다.[28] 1984년부터 소련군이 지휘하는 앙골라 정규군이 남아프리카 연방군에 맞설 정도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28] 이 무렵 쿠바도 앙골라에 개입했기 때문에 이들의 자신감은 더욱 상승했다.[28] 남아프리카 연방과 앙골라 간의 전쟁은 루사카 협정으로 짧게 나마 종결되었지만 나미비아 인민해방전선과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이 휴전 기간 동안 유격활동을 극대화하며 이익을 취하자 전쟁은 재개되었다.[26]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은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앙골라 삼자협상으로 종결되었고, 이 협정에서 쿠바의 앙골라 철수와 남아공의 남서아프리카 철수가 합의되었다.[29] PLAN은 1989년 3월 유격전을 개시했다.[30] 남서아프리카는 1990년 3월 21일 나미비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19]
이웃 국가와의 대규모 전쟁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 국경 분쟁은 남아프리카 사회에 문화 및 정치적으로 경이로운 영향을 미쳤다.[31] 아파르트헤이트 정부는 소련의 지역적 확장주의에 맞선 봉쇄 정책의 일부로 전쟁을 수행했고,[32] 국민의 반공 감정을 적극적으로 고양시키려 했다.[33] 남아프리카 문학에서 일시적으로 통합적 주제로 이 전쟁을 다뤘고, 아프리카어는 국경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범주를 탄생시켰다.[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