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간지

이성의 간지(독일어: List der Vernunft, 理性奸智)는 헤겔의 저서 《역사철학강의》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이성(vernunft)이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 그 방법을 일컫는다.

상세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역사의 진보는 곧 ‘자유 의식의 진보’인데, 자유 의식은 일정 정열에 기초한 인간 행동을 내포하고 있고, 이러한 정열한 기초한 행동은 자연 원리의 기계성에 속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전체〉 그 자체로 불릴 수 있는 이성의 의도에 따라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은,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행한다고 믿는 것과 별개로, 이 모든 행동은 이성의 계기와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 활동과 행동은 역사적 필연성에 귀속된다.

헤겔은 위와 같은 과정이 이성의 계략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철학 강요》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철학 강요》에 따르면, “이성은 그 자체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역사를 추동하는 자연의 힘으로 살아있는 객관을 이용한다.[1] 객관은 그 스스로의 본성에 따라 서로 작용하는데, 본성은 애초에 개별 위에 존재하는 전체로서 이성에 의해 규정되며, 결국 객관은 역사에서 이성의 목적을 실현하는 한 매개에 지나지 않게 된다.”라고 한다.[2]

자유 의식과 필연성

구상력의 규준 속에서 자유로운 자의(willkür)의 여지를 남겨놓은 칸트와 달리, 헤겔은 역사의 목적을 실현하는 객관의 활동으로서 자유 의식을 주장하였으며, 자의를 이성의 간지의 한 수단으로서 파악하였다. 이와 더불어, 칸트는 객관을 윤리적 주체로서 개별로 파악한 데에 비해, 헤겔은 객관을 국가 형성의 구체적인 힘으로서 설정하였다.[3]

위와 같은 결론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칸트적 자유가 개별 단위로 인식되는 자아이며, 독립된 개인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자의로 대표되는 것에 반해, 헤겔의 자유는 이성의 목적에 합치하는 자유로서, 필연성(notwendigkeit)을 거스르지 않는 자유이고, 자유는 국가라는 매개로부터 실질한다는 것이다.[3]

헤겔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보편사적 관점에서 역사의 특정한 국면에서 진보하는 것이며, 독립된 개별 자아의 차원에서 실현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유 의식의 향유란, 오로지 시민국가의 형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헤겔은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사회에 추동된 보편적인 시민국가의 성립이 자유 의식 진보의 한 방향이라고 보았고, 절대정신에 합치하는 인간 이성 활동으로서 함구적인 자유 의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4]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