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선왕후

조선 효종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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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 1619년 1월 30일(음력 1618년 12월 25일) ~ 1674년 3월 20일(음력 2월 24일))는 조선왕후로, 효종의 왕후이자 현종의 모후이다.

인선왕후
仁宣王后
조선의 세자빈
재위 1645년 9월 27일 ~ 1649년 5월 13일 (음력)
전임 세자빈 강씨 (민회빈 강씨)
후임 세자빈 김씨 (명성왕후)
조선 효종의 왕비
재위 1649년 5월 13일 ~ 1659년 5월 9일 (음력)
전임 장렬왕후 조씨
후임 명성왕후 김씨
조선의 왕대비
재위 1659년 5월 9일 ~ 1674년 2월 24일 (음력)
전임 자의왕대비 조씨 (장렬왕후)
후임 현열왕대비 김씨 (명성왕후)
이름
별호 인선성모(仁宣聖母) · 인선대비(仁宣大妃)
시호 인선(仁宣)
존호 효숙왕대비(孝肅王大妃)
휘호 경렬명헌(敬烈明獻)
전호 경사전(敬思殿)
작호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
신상정보
출생일 1619년 1월 30일(1619-01-30) (양력)
출생지 조선 경기도 안산
사망일 1674년 3월 20일(1674-03-20)(55세) (양력)
사망지 조선 경희궁 회상전
가문 덕수 장씨
부친 신풍부원군 장유
모친 영가부부인 김이순
배우자 효종
자녀 1남 6녀 (3남 7녀)
현종 · 숙신공주 · 숙안공주 · 숙명공주
숙휘공주 · 숙정공주 · 숙경공주
능묘 영릉(寧陵)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50

생애

탄생과 가계

1618년(광해군 10년) 12월 25일, 경기도 안산(현 시흥시)에서 아버지 신풍부원군 장유(張維)와 어머니 영가부부인 김이순(金二順)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1]

본관은 덕수이며, 시조는 고려 충렬왕제국대장공주를 따라 원나라에서 귀화한 위구르인 장순룡이다. 어머니 영가부부인은 김상용의 딸이며 척화파 김상헌의 조카이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될 위기에 놓이자 화약에 불을 붙여 순절하였다.[2]

김상용 (1561-1637)
인선왕후의 외할아버지이며, 성종의 11남인 왕자 경명군의 외증손자이다.광해군의 왕비인 폐비 유씨와는 이종 사촌이기도 하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하였다.
신풍부원군 장유 (1587-1638)
인선왕후의 아버지이다.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 등과 함께 강화를 주장했으며, 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갔던 며느리 한씨를 아들과 이혼시켜달라고 인조에게 주청함으로써 조정내에 사대부가의 속환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남편 효종과는 성종을 공통 조상으로 한다.

     ┌─→중종   덕흥대원군   선조원종인조효종
   성종   
     └─→   경명군   이연환   김극효      김상용      영가부부인      인선왕후   

군부인 시절

1631년(인조 9년) 9월 13일, 인조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효종)과 가례를 올리고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에 봉해졌다.[3]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강화도로 피난하였는데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강화 조약의 조건으로 남편인 봉림대군을 따라 청나라 심양에서 9년간 인질 생활을 하였다.[4]

1645년(인조 23년) 소현세자가 급서하자 인조의 명에 의해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장씨 또한 세자빈에 책봉되었다.[5]

왕비 · 왕대비 시절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고 아들 현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1661년(현종 2년), 효숙왕대비(孝肅王大妃)의 존호를 받았다.

현종과 인선왕후는 여러 해에 걸쳐 자주 온천에 행차하였는데, 1669년(현종 10년) 3월에는 약 한달 동안 온양온천에 머물렀다. 이때 현종과 명성왕후를 비롯하여 네 공주(숙안, 숙명, 숙휘, 숙경공주)도 함께 행차하였다.[6]

인선왕후는 딸들과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숙명공주숙휘공주에게 보낸 한글편지의 일부가 신한첩에 수록되어있다.

최후

시호 및 능묘

효종과 인선왕후가 묻힌 영릉

1674년(현종 15년) 2월 24일 새벽, 경덕궁 회상전에서 사망하였다.[7] 인선왕후의 사망일을 현종실록은 2월 23일로, 현종개수실록과 승정원일기는 2월 24일로 기록하고 있다.[8]

시호는 인선(仁宣)이며, 사랑을 베풀고 의리에 승복하는 것을 일러 인(仁), 성스럽고 착함이 널리 알려진 것을 일러 선(宣)이라 하였다. 존호와 휘호를 합친 정식 시호는 효숙정범경렬명헌인선왕후(孝肅貞範敬烈明獻仁宣王后)이다.

능은 경기도 여주영릉(寧陵)으로 남편인 효종과 함께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릉의 방식으로 묻혀있다.

인선왕후는 딸들과 한글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숙명공주숙휘공주에게 보낸 한글편지의 일부가 신한첩에 수록되어있다.

예송논쟁

인선왕후가 승하하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장렬왕후)가 며느리의 상중에 얼마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서인과 남인간에 논쟁이 일어났다. 서인은 기년복(1년복)으로 정했다가 대공복(9개월 복)으로 수정하였는데, 남인이 대공복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기년복(1년복)을 주장하였다. 현종은 서인의 주장을 물리치고 남인의 기년복을 채택하여 경신환국때까지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가족 관계

   조선의 왕비      인선왕후 장씨   
仁宣王后 張氏
출생사망
1619년 1월 30일 (1618년 음력 12월 25일)
조선 경기도 시흥
1674년 3월 20일 (음력 2월 24일) (55세)
조선 한성부 경덕궁 회상전

부모

본관생몰년부모비고
  부  신풍부원군 新豊府院君
장유 張維
덕수1587년 - 1638년장운익 張雲翼
밀양 박씨 密陽 朴氏
영가부부인 永嘉府夫人
김이순 金二順
안동1587년 - 1654년김상용 金尙容
안동 권씨 安東 權氏
경명군의 외고손녀

부군

   조선 제17대 국왕      효종 孝宗   출생사망
1619년 6월 23일 (음력 5월 22일)
조선 한성부 경행방 본궁
1659년 6월 13일 (음력 5월 4일) (39세)
조선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자녀

작호이름생몰년배우자비고
장녀숙신공주 淑愼公主1634년 - 1645년미혼
차녀숙안공주 淑安公主1636년 - 1697년익평위 益平尉 홍득기 洪得箕
-대군[9]  ?[주 1] - 1642년
3녀숙명공주 淑明公主1640년 - 1699년청평위 靑平尉 심익현 沈益顯
장남현종대왕 顯宗大王연 棩1641년 - 1674년명성왕후 김씨 明聖王后 金氏   제18대 국왕   
4녀숙휘공주 淑徽公主1642년 - 1696년인평위 寅平尉 정제현 鄭齊賢
-공주[10]   ?[주 2] - 1644년
- 대군[11] 1645년 - 1645년
5녀숙정공주 淑靜公主1646년 - 1668년동평위 東平尉 정재륜 鄭載崙
6녀숙경공주 淑敬公主1648년 - 1671년흥평위 興平尉 원몽린 元夢鱗

손자녀

  • 기울임꼴 : 양자
숙안공주숙명공주현종대왕
홍치상 洪致祥[12]심정보 沈廷輔
심정협 沈廷協
숙종대왕 肅宗大王명선공주 明善公主
명혜공주 明惠公主
명안공주 明安公主
숙휘공주숙정공주숙경공주
정인상 鄭獜祥
정태일 鄭台一
정씨 鄭氏정효선 鄭孝先정씨 鄭氏원명구 元命龜원숙희 元淑喜

인선왕후가 등장하는 작품

드라마

같이 보기

각주

주해


전임
장렬왕후
조선 역대 왕후
1649년 ~ 1659년
후임
명성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