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소공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의 제4대, 제6대 임금

정 소공(鄭 昭公, ? ~ 기원전 695년, 재위 기원전 701년[1],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95년)은 중국 춘추 시대 정나라의 제4대 임금으로, (忽)이고, 만백(曼伯)이며, 정 장공과 정비 등만(鄧曼)의 장자다. 송나라의 지원을 받은 정 여공에게 쫓겨났으며, 복위했으나 암살당했다.

정 소공 홀
희(姬)
정(鄭)
이름홀(忽)
만백(曼伯)
시호소공(昭公)
나라
작위백작
사망일기원전 695년
재위기원전 701년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95년 (복위)
아버지정 장공
어머니등만

사적

정 장공 26년(기원전 718년), 위나라가 남연나라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에 쳐들어오자 아우 공자 돌과 함께 제읍의 군대를 거느리고 적의 배후에 있다가, 6월에 남연 군을 북제에서 패배시켰다.[2]

정 장공 38년(기원전 706년), 북융이 제나라를 공격하자, 태자 홀이 제나라를 구원하여 6월에 북융을 대패시키고 대장 대량(大良), 소량(小良)을 베어 제나라에 바쳤다.[3] 이전에 제후는 딸 문강을 홀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홀은 제나라와 정나라의 국격이 맞지 않으므로 거절했었다.[3] 홀이 북융을 무찌르자 제후는 또 홀을 사위 삼고자 했으나(다만 문강은 1년 전에 이미 노 환공과 혼인했다), 사절했다.[3][4] 채족이 혼인으로써 강력한 제나라를 도움으로 삼지 않으면 아버지가 총애하는 부인들이 낳은 아우들과 군위 경쟁을 벌여야 한다며 혼인을 권했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4][5] 이때 자신이 전공을 세웠으므로 전공 순으로 음식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으나, 노나라는 작위 순으로 나눠줬기 때문에 정나라가 꼴찌로 받았고, 홀은 이 때문에 노하여, 3년 후에 제나라와 정나라가 노나라가 싸우는 단초를 만들었다.[5]

정 장공 43년(기원전 701년) 여름에 장공이 죽자, 채족의 추대로 홀이 뒤를 이어 정백이 되었다.[5] 송 장공이 채족을 잡고, 송나라 여자 옹길의 아들인 아우 공자 돌을 세우도록 협박하자 채족은 이를 승낙했고, 소공은 가을 9월에 위나라로 달아났다.[4][5]

정 여공 3년(기원전 697년), 여공이 채족을 죽이려다 실패해 5월에 채나라로 달아났고, 소공은 6월에 본국으로 귀환했다.[4][6] 가을에 약성을 여공에게 빼앗겼고,[4][6] 이듬해(기원전 696년) 4월에는 정 여공을 복위시키려는 송나라, 노나라, 진나라, 위나라, 채나라의 연합 공격을 받았으나 이들은 정나라를 이기지 못했다.[7]

이듬해(기원전 695년), 고거미에게 살해당했다. 정 장공이 고거미를 경으로 삼으려 했을 때 소공이 반대했었다. 고거미는 소공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하고, 10월 신묘일에 소공을 시해했다.[4][8]

각주

선대
아버지 정 장공 오생
제4대 정나라 임금(정백)
기원전 701년
후대
아우 정 여공
선대
아우 정 여공
제6대 정나라 임금(정백)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95년
(복위)
후대
아우 정자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