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앙 (자수)

풍민왕 조앙(豊愍王 曹昻, 178년 이전 ~ 197년)은 후한 말기의 군인이자 조위의 추존 제후왕으로, 자수(子脩)이며 패국 초현(譙縣) 사람이다. 조조의 장남이다.[1]

측실인 유부인(劉夫人) 소생으로 서장자였으나 유부인이 일찍 죽자, 동복 아우 조삭, 여동생(훗날의 청하공주)과 함께 조조의 정실 정부인(丁夫人)에게 양자로 입적되어 조조의 적장자가 되었다.[2]

생애

약관의 나이에 효렴으로 천거되었다.[1] 건안 2년(197년), 조조는 장수를 공격하여 장수의 항복을 받아내었으나, 조조가 숙부 장제의 아내를 첩으로 들이자 장수는 원한을 품었고, 이를 들은 조조가 장수를 죽이려 했으나 그 계획이 누설되어 장수가 먼저 조조를 쳐 조조를 대파(완성 전투)하였으며,[3] 조앙은 전사하였다.[4][1] 당시 조앙은 말을 탈 수가 없어서, 자신의 말을 조조에게 건네고 자신은 장수의 군사들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5]

사후

조앙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1] 이복 동생 조비가 황제가 된 후인 황초 2년(221년)에 풍도공(豊悼公)으로 추존되었고, 이듬해(황초 3년, 222년)에는 번안공 조균의 아들 조완으로 풍도왕의 후사를 삼아 중도공(中都公)에 봉했다.[1] 황초 5년(224년)에 풍도공의 작위를 올려 풍도왕(豊悼王)이라 했고, 태화 3년(229년)에는 시호를 고쳐 민왕(愍王)이라 했다.[1]

조비는 즉위하고서, 항상 “내 형은 효렴으로서 제 분수를 지켰다. 만일 창서가 살아 있었으면, 나는 천하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6]

정부인은 조앙이 죽은 후 항상 “내 아들을 죽이고, 다시 생각하지도 않는구나.”라고 하며 울었고, 조조는 화가 나서 정부인을 본가로 쫓아보냈다. 이후 조조는 다시 정부인을 부르고자 했으나 정부인은 끝내 응하지 않아 둘 사이의 혼인은 깨졌다.[2]

각주

전임
(첫 봉건)
조위의 풍왕
(추존)
후임
(사실상) 조카 풍공왕 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