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고려의 제25대 임금 (1236–1308)

충렬왕(忠烈王, 1236년 4월 3일 (음력 2월 26일) ~ 1308년 7월 30일 (음력 7월 13일))은 고려의 제25대 국왕(재위: 1274년 ~ 1298년, 복위 : 1298년 ~ 1308년)이다.

충렬왕
忠烈王
제25대 고려 국왕
재위 1274년 6월 18일 ~ 1298년 1월 19일 (음력)
1298년 8월 18일 ~ 1308년 7월 13일 (음력)
전임 원종
후임 충선왕
고려국 왕태자
재위 1260년 8월 2일 ~ 1274년 6월 18일 (음력)
전임 왕태자 전 (원종)
후임 왕세자 원 (충선왕)
고려국 태상왕
재위 1298년 1월 28일 ~ 1298년 8월 18일 (음력)
전임 태상왕 원종
후임 -
이름
왕거(王昛) 왕심(王諶), 왕춘(王賰)
별호 태손(太孫)
시호 고려: 광문선덕경효대왕(光文宣德景孝大王)
원: 충렬왕(忠烈王)
능호 경릉(慶陵)
신상정보
출생일 1236년 2월 26일(1236-02-26) (음력)
출생지 고려 강화도 별궁
사망일 1308년 7월 13일(1308-07-13)(72세) (음력)
사망지 고려 개경 신효사
부친 원종
모친 순경태후 김씨
배우자 제국대장공주, 정신부주 왕씨
자녀 3남 2녀
충선왕, 강양공, 정녕원비, 명순원비
소군 왕서

휘는 (昛) 초명은 심(諶), 춘(賰) 원에서 내린 시호충렬(忠烈)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광문선덕경효대왕(光文宣德景孝大王)이다. 원종과 순경태후(順敬太后) 김씨(金氏)의 맏아들이다.

원나라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여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으며, 충렬왕 이후의 국왕들은 원나라 황족의 딸을 정비 또는 후궁으로 맞이하였다.

생애

1236년(고종 23년), 당시 태자였던 왕태자 식(원종)과, 태자비 김씨(정순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 이듬해 어머니를 여의었다.

1259년(고종 46년), 할아버지인 고종이 붕어하였는데, 당시 아버지 원종은 원나라에 있었으므로 고종의 장례를 주관하고 아버지가 귀국할 때까지 반년간 국정을 임시로 돌보았으며 관례를 치렀다.

1260년(원종 1년) 8월, 태자로 책봉되었다. 1274년(원종 15년) 5월, 쿠빌라이 칸의 딸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원나라에서 혼인하였다. 혼인한 그해 음력 6월 원종이 붕어하자 귀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즉위한 그해 쿠빌라이의 강요로 일본 정벌에 동로군(東路軍)을 파견하였다.

1276년(충렬왕 2년) 3월, 원나라 관리 다루가치가 충렬왕에게 말하기를, "선지(宣旨)라고 일컫고, 짐(朕)·사(赦)라고 일컫는 것이 어찌 참람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지적을 하자 충렬왕이 고려 관리 중찬 김방경과 좌승선 박항에게 이 지적을 해명하라고 해 "감히 참람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종(祖宗)께서 서로 전하여 오던 옛날 법을 따른 것뿐입니다."라고 해명하였다. 이 날 이후 고려는 "짐"은 "고" 또는 "과인"으로, "폐하"는 "전하"로, "태자"는 "세자"로, "선지"는 "왕지"로 명칭이 격하 되었다.[2] 또한 원종을 마지막으로 왕의 사후 태묘에 봉안하는 위패에 올리는 묘호인 '조', '종'을 쓰지 못하고 시호만으로 칭했다. 충렬은 원에서 보낸 시호이다. 충렬왕이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으므로 몽골에서 온 칙사나 장군과 지위가 같다고 보고 국왕이 이들과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상대하는 것을 중지하고, 높은 임금의 자리에 앉아서 이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1277년(충렬왕 3년), 원나라의 병마를 사육하기 위한 제주도에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됐다.

1280년(충렬왕 6년) 정동행중서성이 설치되자 원나라의 요구로일본 정벌을 준비하기도 했다. 1290년(충렬왕 16년) 합단(哈丹)이 내침하여 강화로 천도했으며, 김방경(金方慶)의 활약으로 수차 왜구·여진의 침입을 격퇴할 수 있었다. 1281년 원나라 쿠빌라이 카안으로부터 부마고려국왕인(駙馬高麗國王印) 도장을 수여받았다.

1298년 (충렬왕 24년) 세자(충선왕)에게 선위하고 광문선덕(光文宣德)의 존호를 받아 태상왕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7개월만에 복위하였다.

가족 관계

고려 제25대 국왕충렬 경효대왕
忠烈 景孝大王
출생사망
1236년 4월 3일 (음력 2월 26일)
고려 강화도 별궁
1308년 7월 30일 (음력 7월 13일) (72세)
고려 개경 신효사

충렬왕의 직계조상

 
 
 
 
 
 
 
 
 
 
 
 
 
 
 
 
 
 
명종
 
 
 
 
 
 
 
강종
 
 
 
 
 
 
 
 
 
 
 
광정태후 김씨
 
 
 
 
 
 
 
고종
 
 
 
 
 
 
 
 
 
 
 
 
 
 
신안후 왕성
 
 
 
 
 
 
 
원덕태후 유씨
 
 
 
 
 
 
 
 
 
 
 
창락궁주
 
 
 
 
 
 
 
아버지 원종
 
 
 
 
 
 
 
 
 
 
 
 
 
 
 
 
 
신종
 
 
 
 
 
 
 
희종
 
 
 
 
 
 
 
 
 
 
 
정화태후 김씨
 
 
 
 
 
 
 
안혜태후 유씨
 
 
 
 
 
 
 
 
 
 
 
 
 
 
영인후 왕진
 
 
 
 
 
 
 
성평왕후 임씨
 
 
 
 
 
 
 
 
 
 
 
연희궁주
 
 
 
 
 
 
 
  충렬왕  
 
 
 
 
 
 
 
 
 
 
 
 
 
 
 
 
 
 
 
 
김봉모
 
 
 
 
 
 
 
김태서
 
 
 
 
 
 
 
 
 
 
 
미상
 
 
 
 
 
 
 
김약선
 
 
 
 
 
 
 
 
 
 
 
 
 
 
민식
 
 
 
 
 
 
 
여흥 민씨
 
 
 
 
 
 
 
 
 
 
 
미상
 
 
 
 
 
 
 
어머니 순경태후 김씨
 
 
 
 
 
 
 
 
 
 
 
 
 
 
 
 
 
최충헌
 
 
 
 
 
 
 
최우
 
 
 
 
 
 
 
 
 
 
 
송씨 부인
 
 
 
 
 
 
 
우봉 최씨
 
 
 
 
 
 
 
 
 
 
 
 
 
 
정숙첨
 
 
 
 
 
 
 
하동 정씨
 
 
 
 
 
 
 
 
 
 
 
미상
 
 
 
 
 
 

부모

생몰년부모비고
원종
元宗
1219년 - 1274년고종
高宗
안혜왕후 유씨
安惠王后 柳氏
제24대 국왕
정순왕후 김씨
靜順王后 金氏
순경태후
順敬太后
1222년 - 1237년김약선
金若先
우봉 최씨 牛峰 崔氏
[3]
최우의 외손녀


왕비

왕비시호이름생몰년부모별칭비고
제국대장공주
齊國大長公主
장목왕후
莊穆王后
보르지긴 쿠틀룩켈미쉬
孛儿支斤 忽都魯揭里迷失
1259년 - 1297년세조
元 世祖
예쉬진 카둔
阿速眞 可敦
원성공주
元成公主
안평공주
安平公主
인명태후
仁明太后
칭기즈 칸의 증손녀

후궁

시호본관생몰년부모비고
정신부주 왕씨
貞信府主 王氏
정화궁주
貞和宮主
개성미상 - 1319년시안공 왕인
始安公 王絪
[4]
미상
원종 원년(1260년) 태자비 책봉
[5]
제국대장공주에 의해 후비로 강등
숙창원비 김씨
淑昌院妃 金氏
숙비
淑妃
언양미상김양감
金良鑑
정주 정씨
貞州 鄭氏
충렬왕 사후 충선왕의 후궁이 됨
시비 반주
侍婢 盤珠
미상미상미상최의의 여종
시무비 시씨
柴無比 柴氏
[6]
태인미상 - 1297년미상충렬왕 23년(1297년) 충선왕에 의해 처형됨
후궁 김씨
後宮 金氏
[7]
미상미상김시열
金時悅
미상


왕자

이름생몰년생모배우자비고
1소군
小君

1258년 - 미상
1259년 - 미상
시비 반주미상
2강양공
江陽公

미상 - 1308년정신부주 왕씨미상공양왕의 어머니인 국대비 왕씨의 조부
3충선왕
忠宣王


이지르부카
益知禮普花
1275년 - 1325년제국대장공주계국대장공주
薊國大長公主
제26대 국왕
4▨▨군
▨▨君
[8]
1278년 - 미상제국대장공주미혼조졸

왕녀

생몰년생모배우자비고
1정녕원비
靜寧院妃
미상정신부주 왕씨제안공 왕숙
齊安公 王淑
[9]
2명순원비
明順院妃
미상 - 1320년정신부주 왕씨한양공 왕현
漢陽公 王儇
[10]
3▨▨공주
▨▨公主
[11]
1277년 - 미상제국대장공주미혼조졸


충렬왕이 등장하는 작품

같이 보기

각주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고려 왕실과 원나라〉"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