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진위대

평양진위대(平壤鎭衛隊)는 대한제국기 평양에 배치되었던 진위대를 뜻한다. 1895년 처음 설립되었으며,[1] 초기에는 1개 대대로 이루어졌으나,[2] 이후 많이 강화되었다.[3] 한일신협약으로 인해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1907년 8월 6일 오전 8시, 평양진위대도 해체되었다.[4] 고종 황제가 특별히 신임하여 궁궐 경호를 위한 부대로 평양에서 서울로 차출하기도 하였다.[5]

잭 런던이 촬영한 평양진위대의 모습

설립

평양진위대는 1895년의 군제계혁 중 하나로 설립되었다. 평양부에는 전주부처럼 진위 1개 대대가 설치되었다.[6] 1900년, 의화단의 침략으로 인하여 병력이 더 필요하게 되자, 증강이 실시되었다.[3] 1900년 9월 21일 평양진위대는 1개 대대에서 2개 대대가 되었고 총 5개의 중대로 편성하게 되었다. 정원은 총 1,000명이었다.[7] 이후 1901년 3월 1일, 진위 제 4연대에 편제되었다.[8] 1905년 진위대 감축 당시에 해체되지 않은 진위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연대급이 아닌 대대급으로 바뀌었고, 진위 제7대대가 되었다.[9] 하지만, 한일신협약으로 인해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평양진위대도 8월 6일 오전 8시에 해산되었다.[4]

해체 이후

1907년 해산된 이후, 일부 병졸들은 일부 의병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때 평양진위대 소속이었던 김국선(金國善)은 부하 80여명과 함께 함경도에서 활동하였다.[10]

사령관

진위대대 시기

이름계급임명일퇴임일
김유현 (金有鉉)참령1895년 11월 12일 (음력)[11]1897년 6월 28일 (휴직)[12]
구연황 (具然恒)참령1897년 6월 28일[12]1900년 5월 18일[13]
이창환 (李昌煥)참령1900년 5월 18일[13]1901년 3월 1일 제4진위연대로 편입

진위 제4연대 시기

이름계급임명일퇴임일
김정근 (金禎根)부령1900년 7월 27일[14]1900년 8월 9일(휴직)[15]
이창구 (李昌九)부령1901년 2월 27일[16]?
양성환 (梁性煥)부령1903년 3월 8일[17]?
이근형 (李根馨)부령1904년 3월 4일[18]대대급으로 감축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