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카타르 쿠데타

1995년 카타르에서 일어난 궁정 쿠데타

1995년 카타르 쿠데타(아랍어: انقلاب_1995_في_قطر)는 1995년 6월 27일 카타르에서 일어난 무혈 쿠데타이다.[1][2] 당시 왕세자였던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가 타니 가문의 지지 하에 아버지이자 카타르의 에미르였던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가 스위스 제네바에 해외 순방을 가는 동안 쿠데타를 일으켰다.[3][4] 1995년 쿠데타는 1992년부터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에게 주었던 일부 권한을 아버지인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가 다시 되찾으러 하며 1995년 초부터 부자 관계가 악화되는 와중에 일어난 사태이다.[5][3]

1995년 카타르 쿠데타

쿠데타를 일으킨 당시 국방장관이자 카타르군 총사령관인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날짜1995년 6월 27일
장소
결과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왕세자의 무혈 쿠데타 성공
지휘관
카타르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왕세자카타르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피해 규모
사상자 없음

원인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은 1972년 2월 쿠데타를 통해 전 국왕이었던 아마드 빈 알리 알타니가 이란 순방을 간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켜 카타르를 집권하고 있었다.[6] 이후 할리파 빈 하마드 국왕은 근대화 정책을 펼치고 1977년 5월에는 차남이었던 하마드 빈 할리파에게 공석이었던 왕세자 자리를 부여하였다.[7] 하지만 할리파 국왕이 1990년대 이후 차남인 하마드 빈 할리파에게 넘겨주던 권력 이양을 중지하고 전 석유 및 재무장관이자 1992년 하마드 빈 할리파의 영향으로 축출되어 프랑스로 망명하던 압델라지즈 빈 할리파 알타니에게 권력을 다시 넘겨주러고 했던 시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8]

여파

쿠데타 수 시간 후 카타르의 의회 격에 해당하는 카타르 자문위원회(슈라위원회로도 불림)는 슈라위원회 특별회의를 소집하고 쿠데타 직후 권력을 장악한 하마드 왕세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헌법에 따른 강제적인 왕위 이앙 절차를 마쳤다.[9] 또한 하마드 왕세자는 쿠데타 직후 짧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오늘 일어난 일이 기분좋은 것은 아니나, 이는 단행되어야만 했던 일이고 나는 이를 해야만 했다"라고 밝혔다.[10] 이 때문에 해외 외교관들은 쿠데타가 형제 간 왕위계승권 문제 및 내부 권력투쟁에 따른 영향이라 분석하였다.[11]

쿠데타가 일어나자 국왕이었던 할리파 빈 하마드는 자신의 아들을 "멍청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자신이 계속해서 카타르의 합법적인 군주라고 선언했으며,[1] 자신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국 카타르로 귀국하겠다고 선언하였다.[12] 반면 아들 하마드 빈 할리파는 역쿠데타를 막기 위해 아버지의 해외 은행 계좌를 동결시키기 위해 미국의 로펌회사를 고용하였다.[3]

1996년 2월 전 경제부 장관이었던 하마드 빈 자심 빈 하마드 알타니의 주도 하에 전 국왕인 할리파 빈 하마드를 복권시키기 위한 역쿠데타 시도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쿠데타는 미수에 그쳐 실패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이집트 같은 전통적인 아랍 지역의 카타르 동맹국들이 역쿠데타 미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3]

강제로 퇴위당한 할리파 빈 하마드는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가 2004년 고국인 카타르로 귀국하는 데 성공했다.[4][14]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