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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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 선제후 | |
재위 | 1464년 9월 7일 – 1486년 8월 26일 |
전임 | 프리드리히 2세 |
후임 | 프리드리히 3세 |
튀링겐 방백 | |
재위 | 1482년 9월 17일 - 1486년 8월 26일 |
전임 | 빌헬름 2세 |
후임 | 프리드리히 6세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41년 9월 17일 |
출생지 |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선제후국 마이센 |
사망일 | 1486년 8월 26일 (45세) |
사망지 |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선제후국 콜디츠 |
가문 | 베틴가 |
부친 |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 |
모친 |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타 |
배우자 |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에른스트(독일어: Ernst, 1441년 9월 17일 - 1486년 8월 26일)는 1464년부터 1486년까지의 작센 선제후이다.
에른스트는 작센 공작들 중 에른스트계 방계 가문의 시초자이자 창시자이며,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직계 부계 조상이다.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여동생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타 사이에서 태어난 8명의 자녀중 차남(자식으로는 네 번째)이었다.
그의 형 프리드리히 (1451년)가 사망하면서 작센 선제후의 차기 법정 추정 상속인이 되었다.
1455년 동생 알브레히트와 함께 독일사에서 "Prinzenraub"[1] (i.e. 공작 절도) 사건으로도 유명한 기사 쿤츠 폰 카우풍겐에게 납치당하였다.
1464년 아버지의 작센 선제후 자리를 계승했고, 1482년에 튀링겐을 합병시켰으며, 3년뒤 (라이프치히 조약에 그의 영토를 동생인 알브레히트와 공유하였고, 이는 공동 영토 분할을 할때까지 지속되었다.
라이프치히 조약에 따라 그는 비텐베르크 주변 지역, 튀링겐 남부 지역, 포크트란트, 플라이스네를란트의 일부를 받았다. 그는 거처로 비텐베르크를 택했다. 그는 비텐베르크에 부를 가져다주었고 헌법을 도입시켰다.
분할을 한지 1년만에 에른스트는 말에 떨어져 콜디츠에서 사망했다.
1460년 11월 19일 라이프치히에서 에른스트는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와 혼인했다. 그들은 7명의 자녀를 두었다:1. 작센의 크리스티나 (1461년 12월 25일 – 1521년 12월 8일) - 1478년 9월 6일 덴마크의 왕 한스와 혼인.
에른스트 폰 작센 선제후 출생: 1412년 8월 22일 사망: 1464년 9월 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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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fürst von Sachs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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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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