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목회자)

왕이(중국어: 王怡, 병음: Wáng Yí, 1973년 6월 1일 ~ )는 중국개신교 목사이다. 왕수야(중국어 간체자: 王书亚, 정체자: 王書亞, 병음: Wáng Shūyà)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그는 쓰촨성 청두시에서 법학자로 활동하는 한편 청두시에서 칼뱅주의 가정교회인 추우성약교회(秋雨聖約敎會)를 설립했다.[1]

생애

왕이는 1973년 6월 1일에 쓰촨성 청두시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몐양시 싼타이현에서 태어났다. 1996년에 쓰촨 대학을 졸업하고 청두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활발한 인권 옹호자이기도 한 그의 문화적, 정치적 논평은 왕이에게 전국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2004년에는 《남방인물주간》(南方人物周刊)이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공 지식인 50인"에 포함되었다. 2005년에 개신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고 가정교회에서 봉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에서 몇 안 되는 선구적인 기독교 인권 변호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2]

왕이는 2006년에 미국 백악관에서 중국의 인권 변호인들과 함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중국의 종교의 자유에 대해 논의했다.[3][4] 2008년에 세계 기독교 법학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돌아왔고 종교적 자유를 증진하는 데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5]

왕이는 2008년에 청두에서 추우지복귀정교회(秋雨之福歸正敎會)를 설립했는데 이 교회는 나중에 추우성약교회(秋雨聖約敎會)로 이름을 바꿨다.[6] 그는 2011년 10월에 안수를 받고 교회 목사가 되었다.[5] 이 교회는 2018년 말에 폐쇄되기 전까지 약 700명의 교인이 있었다.[7]

왕이는 서방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의 기독교 목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추우성약교회는 《애틀랜틱》,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언론과[8][9] 학술 논문의 주제로 소개되었다.[10][11] 《워싱턴 포스트》 편집실은 논평을 통해 왕이가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예배하고, 모이도록 허용하는 숭고한 열망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12]

2018년 12월 9일에 왕이 목사와 다른 교회 신도 100명 이상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었다.[13][14][15] 또한 중국 당국은 교회 탄압에 대한 모든 보고를 금지시켰다.[16] 국제 종교의 자유를 위한 미국 대사는 중국 당국의 이러한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17] 그가 48시간 동안 구금된 이후에 추우성약교회는 그가 체포당하기 2개월 전에 쓴 〈나의 충실한 불복종 선언서〉를 공개했다.[18]

왕이 목사는 2019년 12월 30일에 청두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국가 권력 전복을 선동한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문에는 3년 동안 그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50,000위안의 개인 자산을 몰수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19][20][21]

미국 국무부는 2019년 12월 31일에 공개된 성명을 통해 해당 사건을 "중국 정부가 중국의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 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한 또 다른 사례"라고 규정하고 중국 당국에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했다.[22] 중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은 2020년 1월 1일에 시나 웨이보를 통해 왕이 목사의 형량에 대한 중국 법원의 판결문 스크린샷과 함께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게재했다.[23]

신학

왕이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 사상이 칼뱅주의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삼자애국운동이 중국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는 지역 사회를 중시하는 대가로 세속적인 권위에 대한 숭배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24] 대신 그는 미국에서의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는데 그는 이것이 초월적인 힘, 즉 주권적인 신에 의해 합법화된 헌법적 정치라고 주장했다.[2][25] 나아가 그는 국가가 한편으로는 교회의 일에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성한 의무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26]

왕이는 중국 가정교회의 투명성과 홍보를 촉진하기를 원했다. 그는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적인 일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를 위해 중국 개혁교회는 중국 교회를 위한 목회 선교와 중국 사회를 위한 예언 선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27][25] 프레드릭 펠먼에 따르면 왕이는 이를 장 칼뱅제네바 개혁과 유사하게 중국 전역에 '새로운 제네바'가 확립되는 메커니즘으로 보고 있다.[28]

중국판 95개조 반박문

왕이는 2015년 8월에 정부와 사회 관계에서 중국 가정교회의 입장을 재확인하기 위해 《가정교회에 대한 우리의 입장 재확인: 95개조 반박문》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게재했다. 마르틴 루터95개조 반박문을 반영하듯이 왕이의 《중국판 95개조 반박문》은 가정교회의 관점에서 교회-국가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보여준다.[29]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30]

  • 제1장(1절-17절):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적 권위.
  • 제2장(18절-31절): 하나님의 법과 그리스도의 구원.
  • 제3장(32절-39절): "기독교의 중국화"에 대한 반대.
  • 제4장(40절-44절):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의 몸으로서의 교회.
  • 제5장(45절-72절): 두 왕국의 관계와 정교 분립.
  • 제6장(73절-95절): "삼자애국운동"에 대한 반대와 대위원회의 단언.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