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음력 5월 2일) 또는 8월 21일(음력 7월 3일) 신축(辛丑)일[13]), 광록대부 종불(種拂)이 사공이 되었다.[14]
음력 6월, 대홍려(大鴻臚) 한융(韓融)·소부(少府) 음수(陰脩)·집금오(執金吾) 호모반(胡母班)·장작대장(將作大匠) 오수(吳脩)·월기교위(越騎校尉) 왕괴(王瓌)가 곧 관동(關東)[15]에 이르렀다. 후장군(後將軍) 원술(袁術)·하내태수(河內太守) 왕광(王匡)이 각기 일을 맡아, 이들을 죽였고, 오직 한융만이 화를 면했다. 동탁은 오수전(五銖錢)을 없애고 고쳐, 소전(小錢)을 주조하게 하였다.[16]
채옹은 화제(和帝)의 묘호인 목종(穆宗), 안제(安帝)의 묘호 공종(恭宗), 순제(順帝)의 묘호 경종(敬宗), 환제(桓帝)의 묘호 위종(威宗)을 모두 없애자고 건의하였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져 그대로 시행되었다.[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