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발루에 처음 거주한 사람들은 폴리네시아인이다. 1568년 스페인의 항해가 알바로 데 멘다냐 데 네이라는 남방 대륙을 찾아 항해하던 도중 이 섬을 지나갔다. 1819년, 푸나푸티 환초는 엘리스섬으로 이름 붙여지고, 후에 이 이름은 9개의 모든 섬에 붙여지게 되어 엘리스 제도가 된다. 19세기 말 투발루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1916년 엘리스 제도는 길버트 제도에 편입된다.
1974년, 엘리스 제도는 투표를 통해 투발루라는 이름으로 후에 키리바시가 되는 길버트 제도에서 분리된다. 1978년 10월 1일에 투발루는 완전히 독립하여 영연방에 가입하게 된다. 2000년 9월 5일 투발루는 189번째 국제 연합 회원국이 되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상승해 투발루의 영토가 잠길 위기에 처해있다. 옛 이름은 엘리스 제도(Ellice Islands)였으며 국명 투발루는 투발루어로 "8개 섬의 단결"을 뜻한다.
9개의 큰 섬들은 현재에도 존재하며 아직 전부 바다에 가라앉지도 않았다. 고로 사람들이 바다에 가라앉았다고 주장하는 2개의 섬은 2개의 큰 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섬이나 환초에 속해 있는 작은 섬이 가라앉았다고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해발 고도는 최대 4~5미터이다.
해수면 상승 문제가 계속되면 2060년 이후에는 바다에 완전히 가라앉을 것이라고 한다.[2]
사람과 언어
주민은 대부분이 폴리네시아인이며, 약 5.6%의 미크로네시아인이 있다. 96%의 투발루인은 개신교의 투발루 교회의 신도이다. 기독교이지만, 몇 개의 현지 고유의 종교의 요소가 섞여 있다.
대부분의 국민은 투발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키리바시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도 투발루어와 함께 공용어이지만 일상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없다.
정치
국회 민주에 입각한 입헌군주제를 취하고 있다. 1978년 10월 1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법의 체계는 영국의 일반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18살에 참정권을 가졌다. 현재 총리는 카우세아 나타노이다.
한국은 1978년 10월 1일 투발루의 독립과 동시에 투발루를 국가로 승인하고, 1978년 11월 15일 양국 간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양국 모두 상대국에 상주대사관은 설치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주 피지 대사관에서 투발루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투발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미수교 상태이다.
중국과의 관계
투발루는 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으며 현재 투발루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나라는 중화민국 단 하나 뿐이다. 참고로 주투발루 중화민국 대사관은 푸나푸티(투발루의 수도)에 위치한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거부하였다.
국토 포기 선언에 대한 오해
발단
해수면의 상승으로 나라가 점점 잠기고 있고 일부 주민들이 뉴질랜드 등의 인근 국가로 이주하는 것을 보고 2001년11월 투발루 정부가 국토 포기를 선언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외국의 과학자들이 투발루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투발루는 조만간 국토를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온 국민을 이주시키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 와전된 것이다.
사건
일부 주민들이 인근 국가로 이주한 것은 교육과 경제적인 목적일 뿐이었다고 한다. 윌리 텔라비 총리는 "섬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긴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으며[4] 주민들 역시 자신의 국가를 지킨 채 투발루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
현재
다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잦은 국토 침수 문제는 실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해발고도가 매우 낮고 조금씩이나마 가라앉고 있는 위기 상황이라는 점은 사실이며 학계에서는 대략 2060년쯤 되면 투발루의 거의 대부분 섬이 바다에 잠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세계 환경 단체와 인권 단체에서 침몰하는 투발루를 돕자는 환경 운동을 벌이고 있다.